國立故宮博物院 National Palace Museum
National Palac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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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궁박물원 소개 / 과거와 현재

과거와 현재

                
개관 | 조직과 책무 | 박물관의 주요 건물


項目符號 전통의 계승과 창조, 고궁박물원의 역사


고궁박물원의 시작
국립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은 중국 송대와 원대, 명대, 청대 네 왕조의 궁정유물을 계승한 것으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근대 중국사회의 변천과 밀접한 관계 속에 발전해왔다. 중화민국이 건국되고 13년 후, 청왕조의 마지막 황제 부이(溥儀)가 자금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궁중유물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와 정리를 시작되었고, 고궁박물원이 새롭게 설립되었다.

1925년 10월10일 고궁박물의 설립으로 역대 황실소장의 궁정 유물은 전 인류의 문화 유산이 되어 세세대대로 전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페이지(易培基, 1880-1937)선생이 초대 원장에 취임하였고, 1925년부터1931년까지는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초창기라 할 수 있다.
 
국보를 사수하기 위한 만리길 여정
1931년 9.18사변이 일어나고, 일본이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공세를 시작하면서 북경과 천진지역은 전쟁상황에 처하고 화북지역의 상황이 급박해졌다. 고궁박물원은 사전대비의 차원에서 중요한 유물을 상자에 담아 보관하여 수시로 운반할 수 있도록 피난준비를 시작하였다. 1933년1월, 전세가 악화되고 일본군이 산해관을 넘어오자 1934년1월 31일 고궁박물원의 유물들은 다섯 무리로 분류되어 총 19,557상자에 담겨졌다. 그 중에는 유물전시실을 비롯한 이화원(頤和園)과 국자감(國子監) 유물 6,606상자가 포함되었으며, 몇 차례에 나뉘어 남쪽으로 옮겨졌다.

1934년2월, 국민당정부는"국립 베이징 고궁박물원 임시 행정조직 조례"를 발표하여 고궁박물원을 행정원 소속으로 하고, 마헝(馬衡, 1881–1955)을 초대 원장에 임명하였다. 이 시기 상하이로 운반된 유물과 베이징에 남겨진 유물에 대한 조사정리가 실시되었다. 1935년 고궁박물원은 상하이에 있는 유물 중 대표적인 작품을 선별하여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중국예술 국제 전시회(International Exhibition of Chinese Art)"에 전시하였다. 1936년12월, 난징(南京)에 분원이 건립되고 고궁박물원의 유물은 상하이를 거쳐 난징의 차오티엔궁(朝天宮)에 새롭게 지어진 수장고로 옮겨져 보관되었다.


1937년, 77사변의 발발과 고궁박물원 난징분원
행정원의 지시에 따라 유물들은 각각 남로, 중로, 북로로 나뉘어 후방으로 옮겼다. 일차적으로 옮겨진 유물은 모두 80상자로, 대부분이 런던"중국예술 국제 전시회"에 참가했던 중요한 유물들로 우한(武漢)을 거쳐 창사(長沙)에서 꾸이양(貴陽)과 안쑨(安順)을 통해 쓰촨(四川)의 빠시엔(巴縣)으로 운반되었는데 이것이 남쪽 노선이다. 중앙노선을 통해서는 총 9,331상자의 유물이 운반되었다. 한코우(漢口)와 이창(宜昌)을 거쳐 총칭(重慶)과 이빈(宜賓)을 통해 마지막으로 쓰촨(四川)성의 러산(樂山) 안구샹(安谷鄉)으로 운반되었다. 북쪽노선은 진푸(津浦)철도를 따라 북상하여 쉬조우(徐州)에서 롱하이(隴海)철도로 갈아타고 바오지(寶雞)에 도착한 다음, 다시 한쭝(漢中), 청뚜(成都)를 거쳐 마지막으로 쓰촨(四川) 어메이(峨嵋)에 도착하였는데 운반된 유물은 모두7,287상자였다.

항일전쟁 기간동안 유물의 보존과 보호가 고궁박물원 업무의 중심이 되었지만, 전시도 여러차례 개최되었다. 1939년7월, 고궁박물원은 꾸이조우(貴州) 안쑨(安順)의 화이엔똥(華嚴洞)에 보관되어있던 유물 중에서 상(商)과 주(周)시대 청동기 10점과 옥기 40점, 서화 48점, 송대와 원대 테피스트리 각 1점 등 모두 100점을 선별하여 러시아 모스코바로 운반, 레닌그라드에서 열린"중국예술전시회"에 참가하였다. 1942년12월, 이 유물들은 총칭(重慶)에서 개최된"제3회 전국 미술전시회"에 전시되었으며, 전시회를 마치고 다시 안쑨(安順) 수장고로 돌아왔다.
 
본원 소장품의 토대가 된 다른 한 갈래는 1933년 베이징 유물진열소 소장품을 중심으로 난징에 설립된 중앙박물원 준비처의 유물들이다. 1937년 11월 중앙박물원 준비처 소장 유물들 또한 전란을 피해 수로를 통해 서쪽으로 운반되어 총칭(重慶)으로 옮겨졌다. 1939년, 다시 콘밍(昆明)과 러산(樂山)으로 운반되어 최종적으로 쓰촨 난시(南溪)의 리좡(李莊)에 도착하였다. 1945년8월, 일본이 항복하면서 후방으로 옮겨졌던 유물들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난징(南京)으로 돌아오게된다.
 
바다를 건너 타이완으로, 박물관을 다시 열다
1948년 가을,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전황이 역전되면서 중앙정부는 고궁박물원과 중앙박물원 준비처의 핵심유물들을 타이완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이때 중앙도서관과 중앙연구원산하 역사언어 연구소, 그리고 외교부와 교육부의 관련 유물과 문서 등이 함께 운반되었다. 1948년 말, 일차적으로 운반된 유물은 난징으로부터 해군 함정에 실려 지롱(基隆)에 도착하였다. 다음해, 두 번째와 세번째로 운반된 유물들이 타이완에 도착한다. 운반된 고궁박물원 유물 총2,972상자는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옮겨진 유물의 22퍼센트 밖에 되지 않지만 중앙박물원 준비처 유물 852상자와 더불어 상당히 중요한 유물들이다.

고궁박물원이 타이중(台中)에 있던 시기, 정부는"국립중앙박물원 공동 관리처"를 설립하고 고궁박물원과 중앙도서관 및 중앙박물원 세 기구에서 타이완으로 옮겨온 유물과 인원을 합병하여 교육부에 소속시키고 항리우(杭立武,1902–1991)부장이 주임위원에 겸임하였다. 타이중현(台中縣) 우펑향(霧峰鄉) 베이꺼우(北溝)에 수장고가 신축되고 유물에 대한 조사와 정리를 실시하였으며,《중화문물집성(中華文物集成)》전집이 출간되었다. 1957년에는 베이꺼우 전시실이 정식으로 문을 연다. 1961년 대표유물 253점을 선정하여"중국의 국보(Chinese Art Treasures)"란 주제로 1년간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보스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의 5대 도시를 순회하는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그 중 50점의 핵심 유물을 다시 선별하여 뉴욕 세계박람회에 전시하였다.

1965년 타이베이 와이쐉시(外雙溪) 새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었다. 행정원은"국립고궁박물원 관리위원회 임시 조직조례 규정"을 공포하고 왕쉐우(王雲五)선생을 주임위원으로, 쨩푸쫑(蔣復璁)선생을 원장에 임명하였다. 신축 박물관은"중산박물원(中山博物院)"이라 명명하고, 국부 손문(孫文)선생 탄신 백주년 기념일에 맞춰 개관하였다.

조직을 개편하고 업무를 확장하다
박물관에 있어 소장품의 양적인 증가도 중요하지만 유물에 대한 안전한 보관과 보존환경의 구축, 연구인원의 확보 및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본원은 와이쐉시에 새박물관 건물을 신축한 이래, 지금까지 여러차례의 조직 개편을 통해 업무와 인원을 확대하고 통합하였으며 다섯 차례의 확장공사를 통하여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5년 타이베이에 새롭게 박물원이 복원된 후, 다양한 사업들이 추진되었다. 서예와 회화, 청동기, 도자기, 옥기, 완상품, 직물, 도서문헌을16개의 전시실과 8곳의 화랑에 나누어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이 각 전시실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다. 이듬해에는(1966)《고궁통신(故宮通訊)》과《고궁계간(故宮季刊)》이 연이어 발간되었다. 1967년 1월 중앙통로에"천하는 모든 이의 것(天下為公)" 이란 구절이 새겨진 아치와 기둥를 세웠다. 같은 해 말, 신관 좌우 양측 확장공사(제1기 확장공사)를 완료하였다. 박물관업무의 전개에 맞춰 현실에  맞지 않는 조직과 인원을 개편하였다. 1968년에 수정된 조직규정을 발표하고 유물조와 서화조를 기물, 서화, 도서문헌의 세 부처로 확대하였으며 다시 전시, 출판, 등록 세 조를 확장개편하여, 유물의 조사정리와 등록을 실시하고 기타 학술기관과의 교류활동을 추진하였다. 같은 해 고궁박물원 도서관 열람실이 정식으로 대외개방되었다. 1970년 보존과학 기술실 신설을 끝으로 조직개편이 대체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1971년, 제2기 확장공사인 신관 양측 전방확장 공사가 완공된다.

장푸쫑(蔣復璁)원장은 고궁박물원을 18년동안 이끌었으며 두 번의 확장공사와 두차례에 걸친 조직개편과 증설을 통해 국립고궁박물원이 현대식 박물관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하였다. 또한 박물관 본연의 업무가 모두 이 시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데 각종 정기간행물과 단행본, 도록, 목록, 화책, 화권 등이 잇달아 출판되었다. 또한 직원들이 국외에서 열리는 각종 훈련과 시찰, 국제학술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70년에는 일본 오사카의"만국박람회"에 참가하여"중국 고서화 토론회"를 주최하여 좋은 평가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본원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또한 후학양성을 위해 고궁박물원 연구원들의 풍부한 실무 경험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립 타이완대학(國立台灣大學) 역사학과 대학원에 중국미술사전공(中國藝術史組)의 개설을 지원함으로써(1971), 타이완 국내 미술사 연구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는데 일조하였다. 중화민국은 중국 역대 역사편찬이란 임무를 완성하기 위하여 1978년 국사관(國史館)과 공동으로《청사고(清史稿)》를 편집하였고, 12년 후 국사관은 그 성과물인 《청사고집주(清史稿校注)》를 출간하였다.(1980)

세계를 향하여
1983년1월 장푸쫑원장이 지병으로 사임하고 친샤오이(秦孝儀,1921–2007)선생이 원장에 취임하였다. 고궁관리위원회 위원직을 여러해 역임한 친원장은 고궁박물원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취임 초기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였다. 친원장의 취임기간 동안 《고궁문물월간(故宮文物月刊)》과 《고궁학술계간(故宮學術季刊)》이 발간되었고, 타이완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과 함께 박물원 소장의 문연각(文淵閣)《사고전서(四庫全書)》를 출판하였다. 이시기 일본화교 린종이(林宗毅,1923–2007)선생으로부터 주희(朱熹)의 〈이격사(易繫辭)〉를 기증받았으며, 장따첸 선생의"모예정사(摩耶精舍)"가 기증되었다. 이밖에 유물 보호를 위한"제한접근, 제한전시"제도가 수립되었다. 다음해(1984), 고궁박물원의 제3기 확장공사로 행정빌딩이 신축되면서 유물수장 공간과 그 환경이 대대적으로 개선되었고, 전시공간 역시 확대되었다. 또한 박물관내 항온항습과 방화, 방습, 방진 및 24시간 방범안전 감시시스템이 구축되었다.

1985년에는"중국문화와 세계문화의 관계"라는 주제식 전시를 시행하여 관람객들의 동서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도모하고, 당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미디어 상영실이 다수 설치되었다. 이밖에, 본원의60주년을 기념한 일련의 학술행사가 개최되었다. 친원장은 박물관이 지닌 사회교육적 사명을 상당히 중요시하여 당시 전시담당 부서에게 의무적으로 매일 타이베이 근교의 현과 시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전시설명을 하도록 지시하였을뿐만 아니라"활동과 창의"어린이 교실,"유물강습회" 등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또한 친원장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문화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새롭게 문을 연 전통 다실 산시탕(三希堂)은 예술과 생활이 하나가 된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송대와 명대 중국 전통 정원을 본따서 정관 서쪽 아래에 즈산웬(至善園)을 만들고, 동쪽 경사로 옆에 즈더웬(至德園)을, 정관 우측 공터에 호우러웬(後樂園)을 조성하였다. 또한 정관 전시실 천정 아래에 실내정원을 배치하여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였다.

1987년, 총통령으로 공포된"국립고궁박물원 조직조례" 가 실시되고 고궁박물원 원장직을 행정원에서 특별 임명하도록 하였다. 1989년 7월 고궁박물원은 유물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정리를 시작하여 1991년5월에 완료하였다. 같은해  행정원은 국립고궁박물원"관리위원회"를"지도위원"으로 바꾸었다. 1995년 제4기 확충공사로 도서문헌관이 준공되어 넓고 쾌적한 공간의 현대화된 도서관이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400평에 이르는 전시실이 증설되어 대여전시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도서문헌관 개관에 맞춰 개최된"루브르박물관 소장 명화전"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으로부터 16세기에서 17세기의 풍경화 총 71점을 대여전시하여 많은 관람객을 불러모았으며 공전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같은 해 말에는 타이완 국내 옥기(玉器) 개인 소장가와 협력하여"옥기 특별전"을 개최하였고 아울러 중국어, 영어, 일어 전시설명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 후"중국 조각 특별전"(1997),"서양화와 조각","피카소의 세계"(1998),"삼성퇴(三星堆) 이야기","한대 유물 대전"(1999)등의 전시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해외 유물의 국내 대여 전시 외에 국제무대로의 진출도 시행되었다. 1996년3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요청에 따라 본원 소장품 중 452점을 특별히 선별하여"찬란한 중국의 보물: 국립고궁박물원의 소장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4대 도시 순회전을 개최하였다. 1998년10월에는 344점의 유물을"제국의 기억: 국립고궁박물원의 보물"이란 주제로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 Museum of Paris)에서 전시하였다.1999년1월 중남미 7개국 우방의 요청으로 정교한 모방품으로 구성된"고궁의 아름다운 유물전"을 중남미 국가에 순회 전시하였다.

본토문화와 혁신
2005년5월 중앙연구원 원사인 뚜쩡성(杜正勝) 선생이 원장에 취임하면서 타이완 본토문화의 구현을 통해 국립고궁박물원의 운영에 본토의식이 투영되도록 하였다. 뚜원장의 지도아래"포모사:17세기의 타이완, 네덜란드와 동아시아 특별전"이 개최되었으며 전시기간 동안 각계의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뚜원장은 역사학자로서 전시기획 담당자에게 재질분류에 의거한 기존의 전시방식에서 벋어나 시간의 순서에 따른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제안하고, 전시실의 전면적인 수리가 실시된 정관 동선공사를 (제5차 확장공사) 기회로 삼아 본원이 소장한 역대 유물들을 8000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하여,"문명의 서광: 신석기시대","고대문명: 청동기시대","고전에서 전통으로: 진대와 한대","연속와 융합: 육조에서 수당","새로운 규범의 성립: 송대와 원대","새로운 장식미술의 시대: 명대 전기의 관영 공방","관과 민의 경쟁시대: 명대 말기","태평성세의 공예: 청대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의 시대","현대를 향하여:청대 말기"등 편년에 따른 전시를 새롭게 선보였다.

뚜원장은 기업경영의 이념과 방식을 도입하여"유물예술 발전기금 수입관리 및 운용방법"을 제정하여"고궁의 벗"제도를 실시하고 고궁제휴 카드를 발행하였다. 2003년 고궁은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맞춰 행정원의 결정에 따라 쟈이현(嘉義縣)의 타이바오(太保)시에 70헥타르에 이르는 타이완제당의 소유지를 남부분원의 용지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2005년 원장에 취임한 스소우첸(石守謙) 원장은, 4년여간 부원장으로 재임한 바 있으며 그 기간 동안 뚜원장을 보좌하는 한편 정기적인 세미나 개최 등 적극적인 학술연구 활동을 펼쳤다. 석원장은 타이완대학 미술사학과의 설립자이자 회화사 연구자로서 본원의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참여한 대규모 전시"칸의 세기: 몽고제국 원의 다원화된 문화와 예술"을 기획하였으며"몽고제국 원대 학술대회"도 함께 개최하였다. 또한 고궁박물원 8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대관(大觀)-북송(北宋) 서화, 북송 여요(汝窯), 송대판본 도서"전시를 기획하고"규범의 창조: 북송의 예술과 문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는 당시 박물관과 중국미술사학계에서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또한 스소우첸 원장은 세계적인 유명 박물관들이 모두 훌륭한 레스토랑을 구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오래된 직원식당 부지에 BOT 외부수주를 통한 신축 건물의 건립을 적극 추진, 2008년6월에"고궁정화"가 문을 열게되었다.

2006년 행정원 조직개편에 따라 린만리(林曼麗) 원장이 취임하면서,"트렌드 고궁박물원","Old is New"라는 새문화 창조의 구호 아래 고궁박물원은 관련 문화상품과 브랜드 개발을 위해 일본 산리오, 이탈리아Alessi, 프랑스Franz Porcelain, 이메이 식품회사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협력하였다.

본연의 업무로 돌아와 새 장을 열다
2008년5월20일 정권교체후 조우공신(周功鑫)교수가 원장에 취임하였다. 조우원장은 본원에서 27년간 근무하면서 쟝푸총, 친샤오이 원장의 비서를 역임하였으며 16년간 고궁박물원 전시부서를 이끌었다. 조우원장은 본원을 떠난 후 푸런(輔仁)대학에 박물관학 대학원과정을 개설하는 등, 관련 경험이 풍부한 박물관 전문가이다. 조우원장은 취임후 고궁박물원의 성원들을 이끌면서 소장과 연구, 전시, 교육, 보존 등 박물관 본연의 활동과 전문성의 측면에서 그 수준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조직구성과 인원의 조정을 통해 전문적인 경영방식을 본원에 다시 도입하고,"소장품에 새로운 활력을, 고궁박물원의 새로운 가치창조"라는 비젼을 향해 매진하도록 하였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고궁박물원에서는 유물보존과 수집, 조사정리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중국과의 교류 및 해외교류를 적극 추진하여 관광산업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문화 콘텐츠 산업 센터를 기획하고 문화창조 시리즈 활동을 전개하여 다양한 계층의 고미술품 애호가와 젊은층의 참여를 끌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전시환경의 개선과 전시공간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남부분원의 계획에도 전력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 동시에 기업경영과 마케팅 및 서로 다른 업종간의 제휴라는 경영학적 개념을 적용하여 외부 자원과의 결합을 통해 고궁박물원을 더욱 활발하고 다원화된 발전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2008년12월 행정원은"양안(兩岸) 고궁박물원"을 중점 진흥정책의 하나로 제정하였다. 정부가 추진중인 타이완과 중국의 관계정상화 정책에 입각하여 본원은 적극적으로 중국 주요 박물관들과 교류를 추진하여 중국 베이징고궁박물원, 상하이박물관, 난징박물관, 션양박물원등과 다방면에 걸친 협력과 교류를 위한 상호 합의에 도달하였다. 또한 지속적인 협력제도의 수립과 미래의 평등 교류를 위한 탄탄한 기초를 구축하게 되었다.

문화 창의력이 지식경제를 주도하는 큰흐름 속에 본원은 고궁 문화 콘텐츠 산업 센터를 적극적으로 기획함으로써 고궁박물원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자원과 높은 국제지명도를 이용하여 고궁박물원에 국내외 문화 콘텐츠 산업이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고, 또 문화 창의력 시리즈 활동을 통해 잠재력을 가진 디자인팀이 문화 창의력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여 그 결과물로 일반대중들에게 고궁박물원의 미술품을 테마로 한 수준 높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문화상품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밖에도 본원은 브랜드 라이센싱의 방식으로 업체가 창의력을 발휘하여 개발한 관련 문화상품을 전세계에 판매하고, 고궁박물원 문화 콘텐츠 산업센터가 전세계 문화 창의력 산업의 중심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고궁박물원은 현재 근처  국가안보국의 위생교육학교 용지를 취득하여 본원의 계획 추진에 따라 2009년부터 제1회"문화 콘텐츠 산업 발전 워크샵"을 개최하고 박물관 관련 문화상품 개발 업체등 관련 문화 콘텐츠 산업의 연구 및 개발, 디자인팀을 선발하여 미적감각, 문화 창의력, 고궁유물 및 디지탈 가치응용 등 워크샵과 인터액티브 과정을 기획하여 고궁박물원에서 자원과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장을 마련하고 또 이를 통해 본원의 상품 개발과 관련한 제도와 품질관리를 도입하여 장기적인 워크샵을 운영을 통한 박물관 관련 산업의 수준을 제고와 고궁박물원과 문화 콘텐츠 산업 사이의 협력과 마케팅 모델을 수립하고자 한다.

박물관의 교육기능 수행과 관련하여 본원에서는 각종 연령과 계층에 따른 교육활동을 기획하였다. 첫번째로 정기적인 전시설명 및 유물 세미나를 실시하고 아울러 어린이 학습센터, 씨앗교육 교사 워크샵, 학교와 박물관 간의 협력, 자원봉사자 육성, 젊은 디자이너를 위한 고궁박물원의 야간 이벤트, 지방과 도서지역을 위한 복제품 순회전, 원내 시설을 활용한 훌륭한 전시, 그리고 이와 결합한 교육활동 진행하였다. 또한 삼희당에서 개최한"고궁박물원의 밤" 활동과 유물감상과 공연예술을 결합한"고궁의 새바람"전통 희곡 공연이 있다. 이밖에도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고궁박물원 U화 계획은 박물관 건물의 제한된 범주를 벋어나 고궁박물원의 아름다운 유물과 교육자원이 대중의 생활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조우원장의 취임이후 남부 분원 지역 건설 계획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원래의 계획 중 진행상 적합하지 아니한 부분으로 인하여 프로젝트 관리 컨설팅과 조경설계 컨설팅, 건축컨설팅 방면에 계약 해지 또는 계약만료 등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었다. 또한 모라크 태풍 피해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원과의 수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2009년12월17일 후속 건축계획을 2단계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하고 결정하고, 제1기 박물관 구역 주요 건축 관련 공정은 내무부 산하 건설처에서 맡기로 하였다.

2009년 한 해 동안 2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고궁박물원을 다녀갔다. 고궁박물원은 관람객에서 더욱 괘적한 전시 공간과 즐거운 관람 분위기를 제공하기 위하여 고궁박물원의 맞은 편에 위치한 고궁 문화 콘텐츠 산업 센터 예정지와 유기적으로 결합한"제6기 확장계획"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고궁박물원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전통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궁박물원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한다.



項目符號 조직과 책무


‘고궁박물원 조직에 관한 조례’는1986년 12월31일 발표되어, 1987년1월16부터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약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조직 간소화 원칙 및 미래 업무 발전의 필요에 따라 그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본원 조직에 관한 조례 규정을 ‘국립고궁박물원 조직법’으로 개편하여 2008년1월16일 대통령령 제09700003961호로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고궁박물원은 "원 국립 베이징 고궁박물원 및 국립 중앙박물원 준비처 소장의 역대 유물과 예술품에 대한 정리와 보관, 전시진행과 중국의 역사 유물 및 예술품에 대한 수집과 연구, 홍보를 통한 사회교육 기능 확대"를 설립취지로 하며 행정원에 속한다.   

1. 조직

본 박물원 조직법과 부처별 업무규정에 따라, 원장1 명, 부원장 2 명, 사무총장 1 명 그리고 기물처, 서화처, 도서문헌처, 등록보존처, 문화마케팅처, 교육전시처, 안전관리처, 남부분원처, 비서실, 인사실, 회계실, 정풍실 등 8처 4실의 총 12개 부처를 두어, 고궁박물원과 관련된 각종 사업과 관련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조직도】

원  장
부 원 장
사무총장
자  문
기물처
서화처
도서문헌처
보존과학처
문화마케팅처
전시업무처
교육홍보처
남부분원처
총무실
인사실
서무실
정풍실

 
부서
직함
성명
기물처
처장

차이메이펀(蔡玫芬)

서화처
처장

허추안싱(何傳馨)

도서문헌처

처장

 리티엔밍(李天鳴)

등록보존처

처장

지뤄신(嵇若昕)

문화마케팅처

처장

쉬샤오더(徐孝德)

교육전시처

처장

주후이량(朱惠良)

안전관리처

처장


남부분원처

처장대리

천종취엔(陳宗權)

총무실

주임

쑤칭펑(蘇慶豐)

인사실

주임
천밍쭝(陳明忠)

서무실

주임

궈후이민(郭慧敏)

정풍실

주임

천더웨이(陳德偉)



2. 책무

박물원 각 부처의 분업과 그 소관 업무를 분명하기 위해 제정된 본원 업무처리 규정은 행정원의 승인을 얻어 2008년3월13일자로 발표되었으며, 2009년11월2일 수정안 공포후 시행되고 있다.

각부서의 책무는 다음과 같다:

(1) 기물처 담당업무
1. 기물류 소장품의 소장과 관리, 연구 및 목록작성
2. 기물류 소장품의 전시기획과 전시설치, 관련 도록 및 출판품의 집필과 편집
3. 청동기 , 자기 , 옥기 , 기타 완상품 등 기물류 소장품과 관련한 국내외 학술교류
4. 청동기 , 자기 , 옥기 , 기타 완상품 등 기물류 소장품에 대한 수집 계획 수립과 집행
5. 기타 청동기 , 자기 , 옥기 , 기타 완상품 등 기물류 소장품 관련 업무

(2) 서화처 담당업무
1. 서화류 소장품의 소장과 관리, 연구 및 목록작성
2. 서화류 소장품의 전시기획과 전시설치, 관련 도록 및 출판물의 집필과 편집
3. 서화류 소장품과 관련한 국내외 학술교류
4. 서화류 소장품 수집 계획수립과 집행
5. 기타 서화류 소장품 관련 업무

(3) 도서문헌처 담당업무
1. 도서문헌류 소장품의 소장과 보관, 연구, 목록작성, 전산화 및 열람서비스
2. 도서문헌류 소장품의 전시기획과 전시설치, 관련 도록 및 출판물의 집필과 편집
3. 도서문헌류 소장품과 관련한 국내외 학술교류
4. 도서문헌류 소장품 수집 계획수립과 집행
5. 기타 도서문헌류 소장품 관련 업무

  도서문헌관 열람실 모습  

도서문헌관 열람실 모습

(4) 등록보존처 담당업무
1. 본원 소장품의 등록 및 수집작업
2. 본원 소장품에 대한 예방적 보존 및 과학적 연구
3. 본원 소장품의 수복과 보호
4. 기타 상관 등록 보존 사항

(5) 문화마케팅처 담당업무
1. 본원 출판물의 간행과 지적재산권관리, 사용권부여 및 권리침해시 구제
2. 본원 소장품의 확대이용, 콘텐츠 부가가치 창조 및 상품 마케팅
3. 본원 소장품사진과 박물원사진 및 행사사진 촬영 관련 업무의 집행과 관리
4. 고궁 유물 예술 발전기금 관련 업무의 집행과 관리
5. 기타 문화마케팅 관련 업무

(6) 교육전시처 담당업무
1. 교육홍보 활동, 관람객 서비스의 기획과 시행, 자원봉사자 교육과 관리
2. 본원과 전시공간의 디자인 및 관련 시설의 관리와 유지보수
3. 정보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설비에 대한 연구와 기획, 관리 및 유지보수
4. 인터넷 정보 서비스의 기획과 구축, 관리, 유지보수 및 홍보
5. 기타 교육전시 관련 업무

  전시실(로비)  

전시실(로비)

(7) 안전관리처 담당업무
1. 본원의 안전보호 및 재해방지 구제업무의 기획, 집행 및 관리
2. 본원의 안전근무 훈련관리, 감독감사 및 관할 구역 군경단위와의 협조연락
3. 본원의 안전 관제 시설의 관리와 유지보수
4. 기타 관련 안전관리 사항

(8) 남부분원처 담당업무
1. 남부분원 유물의 소장과 관리, 연구, 출판 및 관리
2. 남부분원 유물의 보존과 유지 및 수집
3. 남부분원 교육선전 활동, 관람객 서비스의 기획과 시행 및 자원봉사자 교육과 관리
4. 남부분원의 전체적인 운영과 행정관리 및 건설관련 계획과 집행
5. 기타 남부분원 관련 업무

(9) 총무실 담당업무
1. 문서, 날인, 출납, 건물의 유지보수, 구매, 서무, 재산관리, 각종 고시, 법제 및 홍보 업무
2. 기타 타 부처에 속하지 아니하는 업무 

(10) 인사실은 본원의 인사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11) 회계실은 본원의 회계 및 통계업무를 담당한다.

(12) 정풍실은 본원의 정풍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項目符號 박물관의 주요 건물


1965 년 8 월, 타이베이 와이쐉시(外雙溪)의 신관이 준공되었고,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국부인 손중산(孫中山)을 기념하는 "중산박물관" 현판을 헌정했다. 같은 해 11 월 12 일 공식 개관되었다.

  즈산웬(至善園)의 란팅(蘭亭)  

즈산웬(至善園) 의 란팅(蘭亭)

본관은 중국 궁전 양식의 4 층 건축물로, 추녀 끝이 하늘로 날아갈 듯 화려하고 녹색 기와와 황색 벽돌로 꾸며졌다. 그 후 1967 년과 1969 년 두 차례에 걸친 확장 공사와 1985년 진행된 전시장 리모델링, 그리고 2004년7월의 새단장과 2007년 12월 확대 공사가 완성되면서, 현재 1 층, 2 층, 3 층은 전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4 층에는 휴식공간인 "산시탕(三希堂)"이 들어서 있다.

  장대천 선생의 서재  

장대천 선생의 서재


박물관 오른쪽에는 개방적인 "즈더웬(至德園)"이 들어서 있다. 즈더웬에는 굽이 굽이 다리와 연못과 아담한 정자가 들어서 있다. 청량한 가을밤이면 바람을 따라 코 끝에 와 닿는 계수나무 꽃 향기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1983 년 5 월, 장따첸(張大千)선생의 가족이 장따첸 선생의 생전 거주지인 "모야징서(摩耶精舍)" 를 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장따첸 선생기념관"을 세워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장대천 기념관 주변에는 2 개의 물줄기가 감싸고 있고 새소리가 지저귀고 있다. 서재에는 장따첸 선생의 밀랍인형이 세워져 있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