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 이당(李唐, 약1049~1130/1070~1150이후) 깊은 계곡의 솔바람 (萬壑松風圖) 족자(軸), 비단에 수묵담채, 188.7 x 139.8 cm
이당(李唐, 약 1049~1130이후,일설에는 약1070~1150이후)은 하양(河陽) 삼성(三城)사람으로 자(字)는 희고(晞古)이며 북송(北宋) 휘종(徽宗, 1101~1125재임)시기에 한림도화원(翰林圖畫院)에 임직하였다. 정강(靖康)의 변 이후 중원이 혼란스럽자 건염(建炎)연간 이당은 항주(杭州)로 넘어왔다가 고종(高宗) 소흥(紹興) 연간(1131~1162)에 화원(畫院)이 중건되자 다시 화원에 들어가 성충랑(成忠郎)을 제수 받고 화원의 대조(待詔)가 되었으며 금대(金帶)를 하사받았다.
주봉 옆의 먼산에 ‘皇宋宣和甲辰(1124)春河陽李唐筆’이라고 된 제문(題文)이 있으며, 고령의 이당이 표현한 산석에는 여전히 넘치는 힘이 느껴진다. 주봉의 배치는 화폭의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로 고저가 들쑥날쑥한 구름을 뚫고 솟은 봉우리가 있다. 그림 중의 연이어진 산등성이와 절벽은 마치 막 도끼 날에 잘린 흔적 같은데 이것은 전형적인 부벽준법(斧劈皴法)으로, 돌로 이루어진 산의 단단한 느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산 허리 부분의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흰 구름은 마치 유유히 떠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 편으로는 군산(群山)의 전후의 순서감을 구분해내고 있으며 또한 화면으로 하여금 소밀(疏密) 번갈아 섞이는 효과를 내어 전체적인 분위기에 부드럽고 조화로우며 너무 빡빡하거나 너무 꽉 찬 것으로 인해 감상자가 압박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산꼭대기의 수풀과 가까운 소나무 숲, 감춰지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돌길은 화면의 깊고 고요한 정취를 더한다. 좌측 중경(中景)에는 폭포가 한 줄로 떨어져 내리고 몇 차례 구부러진 후 한 줄기 계곡 시냇물로 바뀌어 물은 돌 사이로 지나가고 있는데 마치 그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그림 안에 소리가 있는 한편의 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