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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산장: 청제국 다원화된 통치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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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피서산장(避暑山莊)은 열하행궁(熱河行宮), 난양행궁(灤陽行宮)이라고도 부르는데 강희42년(1703)에 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피서산장은 청대 황실 정원 중에서 부지가 가장 넓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는 황실 행궁입니다. 산장의 건축은 이름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황제가 매년 방문했던 피서지였지만 피서산장이 지닌 의의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산장이 소재하고 있는 열하 지역은 대부분이 몽고의 유목지로 대청제국이 북아시아로 향하는 진지의 최전방에 속합니다.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황제는 피서산장에 잠시 머물면서 사냥을 하고 몽고와 티벳 라마교의 살아있는 부처와 왕족과 귀족들을 만났으며 외국사절들도 황제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산장으로 와서 알현을 하였습니다. 제국의 수많은 중요한 결정과 정책이 모두 황제가 산장에 머무르던 때에 명령이 내려져 시행이 되었습니다. 피서산장이 제국에서의 지위는 의심할 바 없이 자금성 다음으로 제국내 제2의 정치 중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서산장의 지위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저서 몇 대의 대청 황제를 거치면서 심혈을 기울여 운영되었습니다. 소재한 행정지역이 확대되었고 길을 따라 행궁이 건축되었으며 산장의 경관 배치 계획, 성문과 정자 건축의 설계, 사냥터에 관직을 두고 관리를 했던 것 등으로 볼 때, 대청 제국 통치의 만주족과 몽고족, 한족을 아우르는 정치 제도, 내지와 변방의 문화, 라마불교와 중원지역 신앙과 종교 등 각 방면에 다원화되고 다양한 특색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본 전시는 6개의 주제-「정원을 꾸미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처럼: 작은 우주의 대청제국」,「통치자 신분의 다양성」,「다원화된 종교 정책」,「지방정치제도의 다원화된 특색」,「언어문자의 다양성」그리고 「정치와 예제」로 나누어 본원이 소장한 대표적인 서화, 기물 유물 및 관련 공문서와 문헌을 선별하여 그림과 글의 소개를 통하여 청대 피서산장의 특별한 의미를 하나씩 보여줍니다.

「산장 하나의 역사가 반 권의 청대 역사입니다」. 청나라가 번성하던 시절, 황제 일행이 만리장성을 넘을 때 변경 북쪽 각지의 몽고 왕과 귀족은 사람을 보내어 길에서 황제를 맞이하게 하고 길게 늘어서 포진하고 서로 안부를 물었으며 이로 인해 전쟁의 봉화는 이미 구름과 연기처럼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대청황제의 산장에 대한 운영은 적극적으로 몽고와 티벳 각 지역의 지도자들과 관계를 맺고 열하 지역의 번영을 가져왔으며 여러 나라들이 왕래하고 제국 내에서 다원적인 문화들이 절충되었던 특색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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