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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은 노래하고 먹은 춤을 추네-고궁박물원 소장 회화 가이드

  • #회화

전시소개

옛 그림의 발전은 한 편의 훌륭한 교향악장과 같아서 인물, 꽃과 새, 산수 등 회화 장르의 고전적인 양식에 의거하여 몇 가지 중요한 테마를 구성하고 또한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변주를 하게 됩니다.

인물화의 기초는 육조에서 당대(222-907)사이 고개지(顧愷之)와 오도자(吳道子) 등의 사람들을 거치면서 점차로 확립되었습니다. 산수화의 기초는 오대(907-960)때 형성이 되는데 지리적인 지역 특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호(荊浩)와 관동(關仝)은 북방 산수화의 모습을 그려냈고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산수화에는 물이 많은 강남 지역의 특징이 있습니다. 화훼와 새그림에서는 쓰촨의 황전(黃筌)과 강남의 서희(徐熙)가 역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고전적 양식을 형성하였습니다.

송대(960-1279)산수화에서 범관(范寬), 곽희(郭熙), 이당(李唐)은 모두 기존 있던 고전의 바탕 위에 옛 것을 밀어내고 새로움을 선보여 새 고전이 되었습니다. 궁정화원은 송대 예술을 지원하는 제왕의 제창 하에 전에 없던 성황을 이루며 발전하였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자연에 대한 관찰을 중요하게 여겼고 또한 「시적인 분위기」를 더하여 회화의 의미와 정취를 강화하였습니다. 사물에 대한 관심은 건축, 배와 수레 등 기계적인 구조를 위주로 한 회화 유형을 이루게 하였고, 11세기 후반 회화의 무대에서 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적인 분위기의 강조는 남송 시기에 서예, 시, 회화 이 셋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화첩 형식의 명작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밖에 송대 문인은 예술의 표현 개념을 「모습이 닮은 것」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확대시켜 문인화가 새로운 양식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대(1279-1368) 문인화는 조맹부(趙孟頫)와 원사대가(황공망(黃公望), 오진(吳鎮), 예찬(倪瓚), 왕몽(王蒙))등의 사람들이 복고를 목표로 하였으며 복고로 인하여 더욱 다원화된 양식적 표현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회화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고 명청 시대 이후 여전히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명대(1368-1644)이후 서로 다른 지역의 양식적 특징은 예술 발전 맥락에서 중요한 일환이 되었습니다. 쑤저우(蘇州)의 「오파(吳派)」는 원사대가로부터 우아한 문인 양식을 발전시켰고 저쟝성(浙江省)과 푸졘성(福建省) 출신의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절파(浙派)」는 궁정회화 중에서 발전되어 남송의 고전을 호방한 수묵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쏭쟝(松江)의 동기창(董其昌)과 그 뒤의 왕시민(王時敏), 왕감(王鑑), 왕휘(王翬)와 왕원기(王原祁) 등의 사람들은 또한 옛 고전에 대한 「집대성」을 이어받아 필묵으로 자연을 재창조하며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정통파」를 형성하였습니다.

청대(1644-1911)제왕들은 「정통파」를 숭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 선교사들이 가져온 서양화법을 포용하여 입체감과 투시도법을 이용해서 오래된 전통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였습니다. 궁정 밖의 양저우(揚州)에서는 「괴상하고 진기한」 한 무리의 화가들이 고도로 상업화 된 시장에서 활약하였습니다. 그들의 필묵과 형상은 「비정통적인」 모범에서 출발하였고 이들은 후대에 변혁을 추구하는 본보기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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