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중국 청동기 시대는 하(夏)나라 후기(약 기원전 17세기초)에 시작되어 상(商), 서주(西周)에서 동주(東周)까지 1500여 년의 시간을 거치게 됩니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이후 철기가 흥성하였지만 청동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용되었습니다.
진귀한 청동으로 주조된 기물은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소위 「국가의 대사인 제사와 전쟁」에 사용되었는데 청동기는 일부 무기와 악기로 주조되었던 것을 제외하고 주로 제사 용기로 주조되어 제사용품을 담고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 가족의 생명이 면면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제사 중의 놓이는 예기(禮器)의 많고 적음은 귀족의 신분과 계급을 두드러지게 나타냈습니다. 청동기는 상나라와 주나라의 귀족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예기였습니다.
상나라와 주나라(1600-220 B.C.E.)는 중화문화가 구축되었던 중요한 시대입니다. 정치적으로 정권과 신권의 하나였던 것에서 전환되어 예법과 도덕, 인문정신의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물질적으로는 청동기의 주조기술이 발달하여 예기와 병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공예 기술이 새로운 진전을 이루었고 각종 분야가 융성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국가에서 중요했던 「제사」와 「전쟁」에서 청동기의 조형과 문양을 통해서 하늘의 신과 선조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표현하고 정신적인 소통을 하였습니다. 또 「명문」을 새기는 것을 통하여 당시의 제사와 향연, 정벌, 포상, 책봉의 광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청동기 문명은 종(鐘), 정(鼎), 이(彝)와 같은 청동기가 쓰였던 「예제와 음악」에서 찬양되었고, 공을 세우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와 전쟁」를 통해 찬송 되었으며 주나라 사람들이 주조하고 명문을 새긴 「천명을 받아 혁신하는 것」과 「아름다운 주나라의 글」에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되고 있으며 동주(東周)의 번화하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새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진한(秦漢)의 통일에 이르러서 청동기는 비록 예기의 중심에서 점차로 벗어나게 되었지만 하나의 고전으로 전환되어 사상과 문화적인 바탕이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청동기에 깊이 간직된 중화문화의 아름다움은 넓으면서 깊고, 오묘하고 빼어나면서도 보편적입니다.